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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쿱정] 오렌지 마말레이드

*조각글

*약수위주의





사양 맞추느라 비싸게 주고 산 데스크 탑이 하루아침에 뻑이 났다. 어디 수리점에 가져다 맡기거나 출장 수리를 부르기도 늦은 시각이라, 승철은 그냥 분노를 가득 담아 키보드를 한 번 쾅 내리쳤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려서 그대로 6인실로 가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제 모니터 앞에서 조용히 안경을 닦고 있던 원우가 발치에 놓인 상자에서 선이 엉망으로 감긴 콘솔 게임기를 꺼내 건넸다. 그걸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받아든 승철은 곧 시작된 원우의 게임 화면을 부러운 듯 쳐다보다 이내 터덜터덜 거실로 걸어 나갔다. . 지금 피시방 가면 회사에서 겁나 뭐라 하겠지……, 하는 당연한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거실 소파에 앉아 조이스틱을 잡은 승철은 언제 아쉬워했냐는 듯 철지난 축구 게임에 몰두했다. 인공지능을 상대로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돌잡이에서 축구공을 잡았다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싶을 정도였다혼자 내리 여섯 판을 승리한 승철은 일곱 번째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의식처럼 묵은 기지개를 한번 켰다. 그러면서 무심코 올려다 본, 거실 벽에 걸린 5분 빠른 시계가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잠에 들 시간도 아닌데다 전혀 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승철은 저 혼자 빠르게 내달리는 시간이 내심 신기하게 느껴졌다.


숙소 현관문이 열린 건, 승철이 조이스틱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냉장고에서 막 꺼내 온 차가운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을 때였다. 현관문이 닫히고 다시 중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머릿속으로 멤버들 얼굴을 하나씩 곱씹던 승철은 멀리서부터 풍기는 술 냄새에 이번엔 매니저들을전적이 있었기에 거의 확신이었다떠올렸다. 그런데 게임 속 심판이 휘슬을 붊과 동시에 거실 벽에 머리를 기댄 건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차가운 밤공기와 술기운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눈이 마주친 승철은 놀란 나머지 손을 삐끗했고, 그 바람에 선축 패스를 상대팀에게 줘버렸다. 드문 실책이었다.

 

안녕…….”

안녕은 무슨. 윤정한 너 말도 없이 어디 갔다 지금 와.”

……는데,”

?”

, 구들이……,”

…….”

……제대,”

 

목소리도 작고 문장도 매끄럽지 못했다. 평소엔 말을 잘만 하던 애라서 그 차이가 더 대비됐다. 아니, 그것도 그렇고. 술도 잘 마시는 애가 뭘 얼마나 마셨길래 저 지경이 된 거야, 대체. 승철은 여전히 조이스틱을 조작하면서도 중간 중간 황당한 표정으로 정한을 힐끔거렸다. 정한은 얼마간 더 그렇게 벽에 기대어 있다가 승철이 있는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그리더니 쓰러지듯 소파에 드러누웠다. 과장을 좀 보태서 그 반동으로 날아갈 뻔한 승철이 결국 조이스틱을 내던지고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구보다 편안하게 누운 정한은 승철을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아까부터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손을 빼 쑤욱 내밀면서.

 

방에 가서 누워. 이 주정뱅이야.”

……, 먹을래?”

넌 그게 귤이냐? 오렌지지.”

.”

오렌지.”

.”

…….”

먹을래?”

 

정한이 제 코트 주머니에서 웬 오렌지 두 개를 꺼내 귤이라고 우겼다. 아주, 우기는 건 세계 제일이지. 승철은 저도 모르게 제 이마를 짚었다가 얼굴을 크게 한번 쓸고 체념한 듯 오렌지 하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 정한을 팔을 잡아 일으켰다. 오렌, 아니, 귤은 또 어디서 났어. 샀어? 주웠어? , 설마 훔친 건 아니지? 뺨에 분홍이 묻은 정한이 승철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야. 바보야. 받았어……, 식당 이모가, 나 예쁘다고 준 거야. 예쁘다고. 정한의 대답에 승철은 꽤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귤 먹자, . 정한은 왼손에 쥐고 있던 오렌지, 아니, 대왕 귤을 고쳐 쥐고 두꺼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아주 좁은 면적을 떼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상큼한 향기가 확 퍼졌다.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일 정도였다. 그러나 화면 속 무자비한 상대팀이 무력한 골키퍼를 상대로 벌써 4번째 골을 획득했기 때문에 승철은 서둘러 다시 소파에 앉아 조이스틱을 잡아야했다. 머지않아 현란한 손가락이 가까스로 스코어가 50이 되는 걸 막아내자, 껍질을 거의 다 까낸 정한이 화면을 게슴츠레 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순전히 짐작이었지만, 렌즈를 끼지 않은 것 같았다.

 

축구네.”

.”

나도 축구.”

안 돼.”

.”

음주 축구는 불법이야.”

불법?”

.”

그럼 잡혀가?”

.”

진짜?”

.”

……뻥치시네.”

 

나쁜 놈아. ? 죄인 최승철은 그, 뭐냐…… , 사약을 받아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승철의 입 안으로 오렌지 한 조각이 들어왔다. 그리고 몇 번 씹기도 전에 또 한 조각이 더 들어왔다. 게임 속 백태클을 겨우 피한 승철은 페이스 조절 없이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세 번째 오렌지 역시 겨우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러자 정한이 의외로 쿨하게 손을 거두더니 들고 있던 걸 제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씹었다. 생각보다 새콤했는지 한쪽 눈이 찡그려졌지만, 평소보다 느릿한 손가락 끝은 큰 동요 없이 남은 반쪽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한 몇 초 잠잠하더니 그새 껍질을 다 깐 정한이 또 고개를 휙 돌렸다. 승철은 반사적으로 긴장했으나 걱정과는 달리 정한은 그저 잘 깐 오렌지 조각으로 승철의 입술 위를 콕콕 건드릴 뿐이었다. 지금 노크 하냐, ? 승철은 그 이상하게 간지러운 행위에 결국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고, 아직도 어딘가 좀 멍한 정한은 그런 승철을 쳐다보다 반 박자 늦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포기를 안 했는지 들고 있던 오렌지 조각을 승철에게 내밀었다. 승철은 못 이기는 척 입을 벌려 그걸 받아먹었다. 그랬더니 정한은, 또 하나를 더 들이밀었다.

 

, 잠깐.”

?”

왜 자꾸 날 먹여.”

그럼 안 돼?”

. 안 돼. 너 열심히 먹어. 자꾸 나한테 주지 말고.”

.”

.”

나는 그냥…… ,”

…….”

입술이 예뻐서 자꾸 주고 싶어.”

…….”

최승철 입술……, , 렇게 누르면 폭신폭신할 것 같아.”

…….”

같은 게 아니라 진짜 폭신폭신…… 이네.”

 

분명 시늉만 하려던 거였는데, 정한은 저도 모르게 검지 끝으로 승철의 입술 가운데를 푹 누르고야 말았다. 거의 동시에 상대팀에게 7번째 골을 먹은 승철은그 찰나에도, 행운의 숫자네,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했다결국 조이스틱을 아무 데나 던져버리고 제 입술 위로 안착한 손가락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화풀이하듯 꾹 깨물었다. 꽤 따끔했던 모양인지 정한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손가락 끝에서 오렌지 향이 났다. 변명 같지만, 그래서 그대로 삼켜버렸다. 물론 승철은 정한과 다르게 시늉만 하려던 건 절대 아니었다.

 

내내 일방적으로 승점을 올리던 정한은 고작 한 번의 반격으로 와르르 무너진 얼굴을 했다. 아마 그 즈음에 술도 다 깨버린 것 같았다. 또렷해진 초점이 그 사실을 반증하고 있었다. 승철은 그걸 알면서도 봐주지 않겠다는 듯, 부러 정한의 눈을 더 똑바로 쳐다보면서 제 혓바닥 위에 얹어진 손가락을 빨았다. 고의로 마찰음을 크게 내거나, 노골적으로 혀를 내어 질척하게 손가락의 형태를 따라 그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정한은 승철이 핥고 있는 게 손가락이 아니라 제 머릿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승철은 줄곧 정한의 손가락 두 개를 유린하다 혀를 미끄러트려 손바닥 가운데를 간지럽혔고, 곧장 더 입술을 내려서 손목 안쪽을 빨기 시작했다. 입술과 혀끝에서 빠르게 뛰는 맥박이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승철은 세리머니를 하듯 그 위로 어지럽게 자국을 남겼다. 아플 만도 하건만 정한은 그저 정신없이 그 행위를 눈으로 쫓는 것에 열중했다. 그러다 정염으로 온데 불이 붙은 시선과 마주쳤다. 무서웠다. 승철에게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곤……, 지금껏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시선의 주인은 정한의, 색이 예쁜 입술 사이로 제 손가락을 구겨 넣었다. 자연스레 혀가 손가락에 붙었다. 승철은 화답하듯 더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그러면서 그 말캉한 살덩이를 제 손가락이 아닌 혀로 범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다. 그런 다음엔, 저 좁은 입안에 버거운 걸 물려 울려 보고 싶기도 했다. 저 발긋한 뺨이, 오렌지 과즙만큼이나 불쾌하고 끈적대는 걸로 뒤덮이면 어떤 기분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 순진한 얼굴이 엉망이 될수록,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일 것 같았다.

 

뭐 해요. 둘이. 안 자?”

…….”

싸웠어요? 표정들이 왜 그래?”

 

급하게 손가락을 뺐다. 덕분에 베일 것 같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끊어진 실처럼 늘어졌다. 몸집을 불려가던 불덩이에 물을 끼얹은 건 난데없이 안쪽 방에서 걸어 나온 민규였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 서서 잠이 덜 깬 얼굴로 둘을 응시하던 민규는 몇 걸음 더 가까이 걸어와서는 널브러진 오렌지 껍질과 손바닥에 짓이겨진 과육, 아직도 함성소리를 내고 있는 게임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다 픽 웃었다. , 뭐야. 이 형들 또 뭔 말도 안 되는 내기 게임 하고 있었구만? 그만하고 자요. 내일부터 연습이잖아. 그리곤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다. 이윽고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철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정한을 쳐다보았다. 꾹 다문 입가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 그건 그렇고,”

……?”

뭐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놀라요?”

아니야, 아무것도. ?”

아니, . 들어가기 전에 거실 정리 좀 하고 들어가라고요.”

 

아주 오렌지 냄새가 진동을 하네. 소파도 닦아요. 꼭이요. 안 그러면 벌레 생겨. 말을 마치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 민규가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거실엔 침묵이 돌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서 승철은 물 티슈를 꺼내 소파와 테이블을 닦고, 남은 오렌지와 껍질을 모아 버린 다음 게임기를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굳은 듯 소파 옆에 서있던 정한은 정리를 끝낸 승철이 이쪽으로 다가오자 투명 냄비에 데이기라도 한 듯 깜짝 놀라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도망치듯 욕실 앞까지 도달한 정한이 가까스로 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예기치 않게도, 끈적거리는 손바닥이 그 손등 위로 겹쳐졌다. 익숙한 체온이었다. 정한은 귓가에서 들리는 약간 가빠진 숨소리를 알아채고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눈앞의 문이 열리는 순간, 제게 닥칠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기대가 엉망진창으로 섞여, 눈을 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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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04 21:17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8.02.04 21:49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헉 너무 과분한 칭찬 해주셔서 지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ㅠ ㅠ 제가 손이 느려서 업뎃을 가뭄에 콩 나듯이 해가지구 늘 죄송스러운데,, 그,, 앞으론 어떻게든 최대한 자주 글 가져오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ㅠ ㅠ 흑흑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리고 D..님도 사는 동안 많이 버시고 + 얼떨결에 성공하세요 ㅠ ㅠ ❤️

  • 2018.02.04 23:03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8.02.05 00:08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헉 안녕하세요 비엔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저는 너무 잘 지내서 탈인 8ㅁ8,,, 일하다 댓글 알림 떠있길래 봤는데 비엔님 보고 뭐 잘못봤나 싶어서 몇번 들여다 봤어요 ㅋㅋㅋㅋㅋ 흐흑 게다가 좋은 말씀만 한가득 써주시고,,, 덕분에 저야말로 지금 엄청나게 행복해졌답니다 ! 정말 정말 x 881004 감사드리고 요즘 날씨가 많이 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되셨음 좋겠어요! ♡♡♡♡ 사랑합니다 ! ♡♡♡♡

  • 2018.02.07 09:29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어딜 봐도 개떡가튼 글인데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ㅜ0ㅜ!! 쿱정 정말 최고 짱짱이에요..(전 아님ㅠ) 흐흑 전 넘나 건강해서 탈이니 노루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우리 함께 (쿱정도 물론) 만수무강해요 ♡♥♡♥

  • 2018.02.07 18:33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선생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글로 이어주세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까지 메일로 제출해주세요 그럼 20000,,,

  • 2018.02.12 07:12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